오늘날의
모든 문명의 토대 중 하나는
“사유재산제”이다.
우리의
가장 뛰어난 모습도
일상생활의 너절한 모습도
자질구레한 모습도
모두가 “사유재산제”와 연결 된다.
또한
사유재산제의 힘은 성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부일처제”는
개인적인 성적 사랑의 결과라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잘못된 견해이다.
문화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일부일처제는
수행해왔던 목적에 비추어볼 때,
어느 시대에서도
개인적인 성적 사랑의 결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일부일처제”는
다른 문명의 결과로서,
전혀 다른 사회적 요구에서 발생한 것이다.
부가 한 사람(남자)의
수중에 집중되고
그 부를 자식에게 상속하여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요구에서 발생되었다.
적자상속이 최초이자 최후의 목적.
이는 수백 년에 걸친 유일한 목적.
“일부일처제”를
최초로 발전시켰던 그리스인은
자식을 낳는 것을 일부일처제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은 일부일처제를
남녀의 화해 결과라든가
결혼의 최고 형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역사에서 한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남녀의 투쟁 선언”
이라고 했다.
이것이 일부일처제의 토대이며
또한 최후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일부일처제로 인한 성적 행동은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바로
상호간의 성관계는
한 남자와 한 여자, 두 사람이 결합된
결혼생활 속에서만의 관계에 한정되었고,
그 결과-
혼전 남녀의 절대적인 순결,
결혼 후 남녀의 절대적인 순결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항상 여자에게만
완고하게 요구되는 짐이었고,
남자에게는 그저 구호 뿐 이었다.
일부일처제 역시
한쪽의 성(性)이 다른 성을 억압,
결혼에서 남자의 지배와
그 상대인 여자의 억압이라는 결과는..
사유재산제의 영향이다.
또한 여자에게만 일부일처제를 요구하여
적자(嫡子) 상속인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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