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에서..

“신부님,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신은 작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둡니까?
이게 무엇입니까, 이 전쟁, 이 빌어먹을 것이.
내 주변에 죽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베트남 참전 군인은 외상후 스트레스로
성직자를 붙잡고
생존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합니다.

성직자는 이렇게 말한..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장에 있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참전 군인은 말한다..
“나는 전쟁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신에 관하여 물었습니다.”

여기서 신부의 대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다른 표현의 침묵인가.
당사자의 아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는 겸손의 위로인가.

당사자(참전 군인)는 신부에게
부조리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공감을 바란 것이다.

하지만, 
신부는 이를 추궁으로 여긴다.
그래서 대답이 회피적인 것이다. 
회피의 전제는 
“내가 당신일 수는 없다” 이다.

어떠한 일에서
무책임한 행동과 그 결과는,
최소한의 믿음조차 사라지게 만든다.

‘당신이 나라면’ 
이 울부짖음 앞에서
‘나는 당신이 아닌’ 
이라고 발뺌하고
추태를 과시하는 모습들을
지금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 있다.

-씨네21 중에서-